<가타카>(1997)와 <이퀄스>(2015)를 통해 바라본 실존주의
–존재할 용기가 필요한 현대인들
1) 가타카와 이퀄스, 20년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영화 <이퀄스>가 지난해에 개봉했을 때, 대중과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20년 전의 <가타카>와 너무 비슷하다’며 신선하지 못하다는 평을 내렸다. 물론 두 영화의 톤과 배경설정을 보았을 때는 그러하다. 하지만 끝에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반대의 것이다.
1997년 앤드류 닉쿨 작(作)의 <가타카>는 우생학이 지배하는 가까운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해 유전자가 조작된 사람들은 ‘Valid’로 불린다. 반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생명들은 ‘Invalid’로 규정되어 후에 종사할 수 있는 직종이 재한된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맨은 후자에 속하지만 어릴 적부터 우주 탐사자를 꿈꿔왔다. 결국 빈센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Valid’에 속하는 제롬 머로우의 유전자를 매매하여 그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가타카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2015년에 개봉한 드레이크 도레무스의 <이퀄스>가 배경으로 한 사회의 모습도 가타카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 ‘Collective’ 사회에서 시민들은 모두 동등하다. 모두가 정신적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감정과 질병이 멸종된 사회이다. 물론 성적 접촉이나 공개적인 감정 표현은 금기시된다. 주인공 사일러스와 니아는 ‘Atmos’라는 우주 탐사의 미덕을 격찬하는 회사의 직원들이다. 니아는 우주탐사와 인간의 역사의 스토리 보드를, 사일러스는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을 담당한다. <가타카>에서는 왜 이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이퀄스>의 세계에서는 종전에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멸종위기가 왔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세계 말고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면 소위 말하는 오피스 로맨스이다. 빈센트 프리맨은 ‘Valid’한 아이린과, 사일러스는 니아와 모든 것을 건 연애를 시작한다. 이 외에도 영화의 전체적 색감이나 차가운 디스토피아적 대화를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렇게 비슷해 보이는 두 영화는 차이는 인류의 존재 의미를 우주에 두느냐 마느냐에 있다. 다음은 빈센트가 토성의 달인 타이탄으로 가는 우주선을 타고 이륙하기 직전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오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인 것 치고는, 고백하건데, 갑자기 떠나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한때는 별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떠나는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빈센트는 지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신분을 내어준 제롬과 동료이자 연인인 아이린과 잠시나마 연대가 있었지만 빈센트는 인류와 사회에 전체적으로 신뢰를 잃고 우주 탐사를 동경한다. 빈센트뿐만 아니라 <가타카>의 모든 시민들이 우주 비행사들을 엘리트로 추대하는 모습을 보아 이 사회 전체가 우주 탐사에 집착한다. 반면 사일러스는 빈센트와 같이 인류의 존재 이유를 우주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아에게 ‘모든 것은 다 여기에 있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가 동일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두 등장인물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게 한 것일까? Independent의 Down to earth: A childhood obsession with space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른 살 이하의 사람이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세대 아이들은 우주 탐사선의 발명으로 인해 미래의 우주여행에 대한 긍정이 있었고 냉전과 테러의 현실에 맞서 이런 꿈을 갖는 것이 필요에 가까웠다. 냉전은 ‘우주 경주’를 시작해 달나라에는 사람을 보냈고, 지구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주입했다.
7,8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고, 우주선을 목격하는 동시에 TV에서는 <스타트랙> 시리즈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시리즈를 시청하면서 우주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자란다. 특히나 60년대에 시민권운동이 전개되고 NASA가 우주비행사들을 대거 모집하는 것을 보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주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1993년 스타트랙 스핀오프 시리즈 <The Next Generation>이 예언했던 것처럼 곧 인간의 우주 탐사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요소 때문에 멈추게 된다. 우주여행의 현실화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비디오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NASA의 우주여행 프로젝트와 관련 있어 보였지만 인터넷부터 닌텐도 Wii, 그리고 iPad까지 이어지면서 곧 공상과학은 소비주의로 변질됐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할 수 있게 됐지만 인류가 연대하여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는 꿈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우주탐사는 환상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공간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가타카>의 제작진과 <이퀄스>의 제작진은 우주탐사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달랐을 터이다.
2)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성을 논하다.
<가타카>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선택은 퇴폐적이고 멋있어 보이지만 결국 모두 공허하다. 빈센트와 아이린의 사랑도, 빈센트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삶의 의미가 사라진 제롬의 자살도, 심지어 빈센트가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모두 공허하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찾으려고 했던 인간의 환상이 깨진 21세기에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야만 한다. 21세기 우주 영화의 특징은 지구를 망친 것은 인간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이다. <이퀄스>의 등장인물들은 디스토피아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긍정한다. 니아는 자신이 S.O.S(Switched On Syndrome)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도 치료도 자살도 거부하고 정체성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사일러스는 니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도 죽음 대신 ‘치료’를 택한다. 치료를 받은 뒤에도 사일러스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결말을 내놓은 이 영화는 인간은 선택을 회피하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이퀄스>의 사회가 감정을 억누르는 이유는 전쟁이 감정으로 인해 터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인간성을 부정하고 저 멀리 있는 우주를 바라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집단적으로 규제하고 인류가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물론 이 주장은 1984, 멋진 신세계, <로건의 탈출> 등 예전부터 반복적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하지만 이 주장은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중요하다. 영화 <월-E>가 2008년에 예측한 것처럼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존재이유를 고민하지 않고도 일생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방해요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왜 존재하지?’ 혹은 ’내 인생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머리 아픈 질문을 떨칠 수 있는 재미난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하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삶의 의미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힘들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우주탐사 영화가 현실 도피적이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20세기 말에 우주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우주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비전이 대중화 되었고, 동시에 인간성을 긍정하는 명작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앤드류 스탠튼의 <월-E>(2008)에서 우주선의 조종사가 지구로 돌아와 인류 역사를 재창조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알폰조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은 배경만 우주이지 주인공이 무중력 상태에서 인간의 공포와 존재의미를 90분간 고민하게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 역시 복잡한 물리학 이론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 주제는 사랑과 인간 연대이다. 70년대 <에일리언> 시리즈를 제작한 리들리 스콧의 <마션>(2015)에서는 주인공이 매우 구체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화성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ABBA의 팝송을 들으며 삶을 긍정하는 태도는 빠짐없이 나온다. 핵심은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서 알아가면서도 우리 각자의 생존 이유를 갖는 것이다.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죽기 쉬운 현대 사회에서 우주 영화들은 묻는다. 인터넷, 닌텐도, 그리고 iPad 등의 방해요소가 사라진 우주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살아갈 자신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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